“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를 동일시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지난해 12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최종 권고안)
최근 당정청이 규제혁신의 핵심 과제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꼽은 배경에는 이를 앞으로 육성할 핀테크 산업의 상징으로 여기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로 활동한 금융행정혁신위는 ‘핀테크’란 포장지로 ‘은산분리 규제’ 논의를 오도한다고 봤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1년에 즈음한 시점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명분과 득실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짚어봤다.
■ 인터넷전문은행은 핀테크인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은 기존 은행권과 금융소비자에게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당장 공인인증서 없이 일상적 금융업무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기존 은행권엔 없었던 100% 비대면 방식의 전세자금대출 등을 선보이고 비영업 시간대 정상영업으로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카카오뱅크는 앱투앱 결제 등 상거래 수수료를 대폭 줄일 새로운 핀테크 시스템도 추진 중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카카오뱅크 출범식에서 “핀테크와 같은 혁신적 금융서비스가 활성화되면 금융소비자의 편의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연관 산업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아이티 플랫폼과 각종 빅데이터 집약체인 인터넷전문은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주자는 입법을 낸 여야 의원들도 이를 핀테크와 4차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혁신위 권고안 작성에 참여했던 김헌수 순천향대 교수(IT금융경영학)는 “신용평가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거나 블록체인을 통해 분산 원장 구조를 만든 것도 아닌데 ‘비대면 영업’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핀테크 아이콘’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 “핀테크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혁신위의 권고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여전히 신용분석과 위험관리 등 은행업의 본질이 더 중요한 단계이고,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일자리 창출과 중금리 대출 시장 활성화 효과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 영업’을 특성으로 하고 ‘비대면’은 인건비 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는 함의를 지닌 것이어서 일자리 창출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리인하·수수료면제 등 가격경쟁은 수익구조를 볼 때 지속력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 보완장치로 은산분리 원칙 지켜질까
은산분리의 취지는 산업자본 대주주가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고 산업자본의 과도한 위험추구를 은행을 통해 견제하려는 것이다. 은산분리는 나라마다 규제 여부가 제각각인데 한국은 이 규제가 센 편이다. 여기엔 재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극심하고, 제2금융권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작용했다. 국회엔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4%에서 34~50%까지로 완화하는 법안들이 올라가 있다. 일부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 소속으로 총수가 있는 기업(재벌)에 대해선 규제완화를 배제하거나 산업자본 대주주에게 대출을 제한하는 등의 보완장치를 붙여놨다.
하지만 고동원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재벌 총수가 없는 정보기술(ICT)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업이 어려울 때 은행 자금에 대한 유혹을 안 느낄 이유가 없다. 대주주가 차명대출로 우회해 상호저축은행을 사금고화한 사례 등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은산분리 규제완화로 기류를 바꾸자 여당 지도부는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반대 의견을 가진 일부 의원들을 관련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상임위(정무위원회)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반면 규제완화 입법을 숙원사업으로 요청해왔던 금융위는 ‘답답하다’는 대통령의 질책과 규제혁신 점검회의 연기 이후 속도내기 행보에 열중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에서 규제혁신 추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달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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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852778.html#csidx9b7fca82ab70f838c61542100531c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