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피카소의 요람

피카소의 요람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앙티브로 향하는 차장 밖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새파란 바다가 청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작달막하고 하얀 예쁜 배들은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 여유로이 떠 있다.
여기에 간간히 들리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까지 듣노라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잡념마저 쉬이 잊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국제 영화제로 익숙한 칸느(Cannes)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시 앙티브, 작은 어촌이라 불리우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정도인 앙티브는 너무나 사랑스런 마을이다.
지금은 부자들의 휴양지로 옛 도시의 정취를 현대식 건물들에 차츰 빼앗겨 가고 있지만 좁다란 골목들과 오래된 집들이 전해주는 소담스런 풍경과 바다를 면한 곳에 위치해 있는 여유로움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의 시골 기차역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역전을 나서면 앙티브 시의 주요 관광명소와 시내까지 연결되는 코끼리 열차가 반갑게 관광객들을 맞는다. 지난여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열차이용을 포기하고 걸어서 시내까지 간 경험이 있지만 성수기가 아닌 시기의 앙티브 시내는 한적하다.
운좋게도 코끼리 열차에서 내린 장소에서는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싱그런 과일들과 향기로운 꽃 내음이 코 끝을 간지럽히고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청 놓아 떠들어대는 상인들의 외침과 이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꼬마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상쾌한 봄기운이 전해진다.
그리고 장터 한 켠에 마련된 골동품 시장에는 옛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품들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내리쬐는 햇살이 나른한 듯 연신 하품을 해 대는 강아지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앙티브의 시작은 1865년, 유명한 식물학자. Thuret 라는 사람이 이곳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의 풍경과 자연을 발견하게 된 것이 시초가 된다.
당시 이곳에는 사람이 산다는 흔적은 등대 하나와 작은 성당 두 개, 그리고 포도주 농장 몇 개에 불과하지 않았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Thuret는 이곳에 땅을 구입하고 빌라 한 채와 우아한 공원을 짓게 한다. 그리고 식물학자이자 꽃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 덕분에 앙티브는 오늘날 세계 제일의 '장미의 도시' 각광 받고 있다.

그 이후, 앙티브는 빠리 오페라와 몬테카를로의 카지노를 설계한 Charles Garnier 가 네덜란드 백만장자의 부탁으로 이곳에 호화 빌라를 설계하게 되는데 이 호화 빌라는 'Eilenroc' 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세워질 빌라의 모형이 되었고 부자들의 휴양지로 각광 받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83개의 호텔이 생겨나고 11개의 캠핑장이 자리잡게 되었다.
특별한 볼거리를 찾기보다는 소도시의 여유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앙티브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한가로이 마을을 둘러보는데 반나절 정도만 투자하면 되기 때문에 관광명소를 보기 위해 정신없이 ?겨 다녀야 하는 대도시의 여행 일정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으로 골목골목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앙티브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시(市)청사와 장터를 돌아보고 코발트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 우아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는 고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투박한 돌로 지어져 왠지 정감이 가는 이 성은 현재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곳의 입구에는 피카소의 흔적을 설명해주는 현판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피카소는 1939년, 이 곳에서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나찌의 빠리 침공이후 빠리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피카소는 다시 남불의 작은 어촌, 앙티브로 돌아왔는데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배경으로는 당시 앙티브 박물관 관장으로 재임하던 도르드 라 수셰르는 Dor de la Souchere 의 제의를 그가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 전시할 데생 한 점을 피카소로부터 기증 받을 의도로 그를 찾아왔던 박물관장은 성채의 맨 윗 부분에 있는 넓고 환한 홀을 내주면서 피카소에게 아뜰리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피카소는 이 작은 마을의 정취가 맘에 들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성에서 그의 작품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흔쾌히 박물관장의 제의를 수락하게 되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이곳을 방문하여, 반바지의 포켓에 아뜰리에 열쇠를 넣고 같은 해 12월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은 그가 미술관의 기증함으로 그대로 이곳의 소장품이 되었다.
피카소는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이곳을 가끔 찾곤 했는데 어느날 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리말디미술관'이라 불리던 이곳을 자신의 이름을 넣어 피카소미술관으로 고칠 것을 제안하면서 이곳은 오늘날까지 피카소미술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피카소 미술관은 매년 1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며 코트 다쥐르 지방의 가장 매혹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작은 항구의 일상을 담은 장면 중 등불 낚시를 소재로 삼은 '앙티브의 밤 낚시' 등이 유명하다.
피카소의 흔적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앙티브는 매년 여름이면 이곳을 찾는 휴양객과 관광객들의 끊이지 않는 발걸음과 남불 최고의 째즈 페스티발의 뜨거운 열기로 도시전체의 음악소리가 메아리 친다.

이미 38년전부터 'Sydney Bechet' 라는 째즈 연주자에 의해 남불 째즈 축제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앙티브 째즈 페스티발 기간중에는 밤 새워 열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몰려든 째즈 애호가들이 어우러져 멋진 한 여름의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