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전 신용카드 원화결제 서비스 차단 하세요

여행|2018. 7. 20. 15:40
7월부터 카드사 누리집·앱으로 신청
금감원 여름휴가철 금융꿀팁 제안

“외국여행 출국 전에 신용카드 원화결제 차단 서비스 신청하세요.”

금융감독원이 19일 여름 휴가철 여행을 떠나기 전후에 챙겨야 할 금융정보를 소개했다. 먼저 환전 수수료는 주거래 은행이 제공하는 조건을 확인해 보는 게 좋다. 또 모바일·피시뱅킹으로 환전을 신청하면 수수료를 최대 90% 할인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가까운 영업점이나 공항 출국장 환전소에서 외화를 수령하면 된다. 또 국내에서 달러 이외의 현지화폐로 환전을 하면 어차피 원화에서 달러로, 달러에서 현지화폐로 전환하는 데 이중 수수료가 든다. 이럴 경우 대개 달러화로 바꾼 뒤 방문국에서 가서 다시 현지화폐로 바꾸는 게 수수료가 싸게 먹히는 경우가 많다.

여행자보험은 금감원이 운영하는 금융소비자 정보 포털인 파인에 접속해 ‘보험다모아’(e-insmarket.or.kr/intro.knia)에 들어가면 상품별로 비교할 수 있다. 가입할 때는 여행목적 등을 사실대로 적지 않으면 사고 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 국내 여행에서 평소와 달리 교대운전을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운전자 확대 등의 특약을 신청하는 게 유리하다. 출발 전날까지 가입해야 여행 시작 당일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존 자동차보험에서 렌터카 손해담보 특약을 활용하면 렌터카 업체에서 가입하는 차량손해면책 서비스보다 돈이 적게 든다.


신용카드 결제는 원화로 할 경우 3~8%에 이르는 원화결제 수수료가 더 붙을 수 있으니 현지화폐나 달러로 하는 게 좋다. 지난 4일부터 지난 4일부터 원화결제 사전 차단 서비스를 각 카드사 누리집, 콜센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신청할 수 있으니, 출발 전 신청을 하는 게 좋다. 카드 영수증에 원화(KRW) 금액이 표시돼 있으면 원화결제 수수료를 내야 하니, 취소하고 현지통화로 재결제를 요구하는 게 요령이다. 또 외국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복제 등의 피해로 귀국 뒤 부정사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국내에 있을 때 외국에서의 카드 승인을 거절하는 서비스(출입국정보활용동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안전하다.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economy/finance/853991.html?_fr=gg#cb#csidx2dfc3943bbf331397ca13e94549dc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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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오리간요리 / 유럽나들이

여행|2018. 7. 1. 19:32

거위 오리간요리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전세계에 고발하고 비난하는 '동물 애호국'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푸아그라'란 거위와 오리 간 요리를 하기 위해, 거위와 오리를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면서 간을 살찌우고,
이를 죽이는 거위 사육 장면이 프랑스 전국동물보호협회(SNDA)신문 광고에 의해 최근 충격적으로 폭로됐다.

초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푸아그라' 성수기를 맞아 각 농가의 거위 사육은 우선 거위의 주둥이에 길이 20∼40㎝ 가량의 튜브를

박아넣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SNDA는 밝혔다.
'깔데기 고문' '콩먹이기'등의 잔혹행위를 통해 거위는 위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모이주머니가 터지기도 한다.
때로는 질식, 심장마비 혹은 급성 간경변으로 죽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는 거위는 대개 정상적인 거위의 간보다 5∼10배 가량 크고 지방질로 가득차게 된다.

거위는 몇 주간에 걸친 '콩 먹이기' 동안 거의 움직일 수 없도록 꼭끼는 창살안에 갇혀 지내며 시간이 지날수록 숨을 할딱거리면서

거의 빈사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프랑스인들의 식탁에 놓이는 거위 간은 이렇게 얻어진다.
SNDA는 "기아로 죽어가는 인간이 있는 반면, 동물 강제 과식으로 간 이상피지 현상을 일으켜 요리 재료를 얻는 것은 이중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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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7대상품

여행|2018. 7. 1. 19:32

프랑스 7대상품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과학분야에서도 세계최고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분야에서 이들은 뛰어난 품질과 기술력으로 세계 정상을 구가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 시장에서 프랑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상품이고, 프랑스 수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에어버스에서 트윙고 자동차, 그리고 메리유 백신, 아리안 로케트, 노르망디 다리 등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상품들이 많지만 여기 프랑스의 산업을 대표하는 7개 상품을 선정해 보았다.

아리안(Ariane)로케트: 우주로의 도전
아에로스파시알(Aerospatiale)社가 개발한
아리안 로케트는 세계 상업위성 발사시장 50% 점유율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의 첫번째 위성인 우리별 1호도 바로 이 아리안 로케트에 의해 프랑스령 기아나의 구루(Kourou) 우주기지에서 발사되었다. 앞으로 선보이게 될 차세대 로케트(아리안 5)는 좀더 대규모의 위성을 우주로 발사할 수 있을 것이다.

르노社 트윙고 - 소형 자동차계의 거인
짧고 밑으로 기운 앞머리, '톡톡' 튀는 색채, 넓은 내부 공간. 트윙고는 출시된지 채 1년도 못되어 프랑스에서만도 24만대가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운전이 간편하여 도시형 자동차로 이상적이며, 또한 장거리도 무리없이 소화해 내고 있다.
이런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르노(Renault)社에서는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기도. 트윙고는 현재 대만(현지 조립), 일본, 중국에서 판매중인데, 판매 곡선이 급속한 상승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IC카드 : 프랑스의 발명품
은행 카드, 전화 카드, 신용카드 등... 세계 전역에서 매일같이 수 백만장의 IC카드가 사프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카드를 발명한 것은 바로, 롤랑 모레노(Roland Moreno)라는 프랑스 엔지니어이다. 이 발명품을 대량생산하여, 프랑스는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는 IC카드의 80%를 생산, 선두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젬플러스(GemPlus)와 뷸(Bull)CP8社가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들이다. 프랑스는 또한 전기통신 분야에서도 선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니텔(Minitel)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전화와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도 하고, 연극표를 구입할 수도 있으며, 주가 지수를 알아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프랑스 가정에는 이 미니텔이 보급되어 있다.
이를 통해 2만 3천 여가지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펜타콕
단 한번의 주사로 펜타콕은 디프로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뇌막염 등 다석 가지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그룹 롱 프랑의 자회사인 파스퇴르 메리유(Pasteur Merieux)사는 백신계의 세계 선두주자로, 지난 1994년부터 펜타콕을 판매하고 있다.
사실 과거에는 각각의 질병에 대해 예방접종을 따로 해야했기 때문에 질병 예방에 애를 먹었고, 또 아직까지 그런 실정에 있는 나라들이 있다. 페타콕의 목적은 바로 이런 불편을 해소하여 질병예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페타콕의 목적은 바로 이런 불편을 해소하여 질병예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파스퇴르 메리유는 총매출의 75%를 수출에서 달성하고 있으며, 또한 총매출의 15%를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메리유사의 백신으로 접종하는 사람이 매년 4억에 이른다고 한다. 




노르망디 다리
1995년 1월 20일 개통된 노르망디는 세느강을 가로질러 옹플러르(Honfleur)와 르 아브르(Le Havre)를 잇는 교각이다.
총 길이 856 미터로 이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의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캐나다의 밴쿠버교가 475 미터로 최장의 다리였다.
노르망디교를 건설한 회사는 건설업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부이그(Bouygues)사이다. 부이그사는 인도네시아, 싱가폴,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서는 평택가스인수기지 확정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TGV
TGV는 프랑스인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교통 수단이 되었다.
17년전인 1981년, 파리-리용 노선의 상업운전을 처음 시작한 이래 3억 5천 만명 이상의 승객을 단 한건의 인명사고 없이 초고속(시속 300 Km)으로 안전하게 운송하여 왔다.
TGV 는 경쟁국들이 결코 따르지 못하는 총체적인 초고속 기술력을 자랑한다. 미래에도 선두 주자로 질주하기 위해 프랑스만이 구체적인 개발 예산 1억불을 투입, 차세대 TGV (시속 350 K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TGV는 경쟁국 타기종에 비하여 초고속 기술에서 15년 앞서나가고 있다. 이는 최고시속 515.3 Km,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운행시속 300 Km라는 2개의 세계 신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점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TGV의 눈부신 기술 개발은 1989년/1990년 시곡 300Km의 제 2세대 아틀란틱을 개통하게 했고, 1994년 5월 6일 부터는 영불 해저터널을 통해 2.5세대 TGV 유러스타가 런던까지 달리고 있다.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프랑스의 유럽 4개국은 1993년 1월 26일, 파리, 브륏셀, 퀄른, 암스텔담의 유럽 4개국 주요 도시들을 잇은 유럽통합노선(PBKA)에 TGV를 선정,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현재 탈리스 TGV가 이 노선에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의 시드니-캔버라 노선에 기종으로 선정되어 세계 최대의 고속전철망 구축에 이바지하게 되었는데 현재 시속 300Km로 운행중이다.
단계적으로 꾸준히 쌓아올리는 기술력 외에 기적적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초고속 기술분야에서 TGV는 미래에도 선두주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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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에어프랑스 콩코드기 참사 이후 제외된 에어버스
에어버스(Airbus): 항공산업의 성공
프랑스 항공산업은 현재 세계 제 3위에 올라있으며, 2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에어버스의 성공이 강력한 프랑스 항공산업을 잘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70년대 초반 에어버스 A300, A310이 소개되었고, 80년대에는 민간항공 기로서는 최초로 완전 전자식 조종장치를 장착한 A320가 소개되었다.

A330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쌍발기이다. 또한 A340은 유럽 최초의 장거리 4발 제트기이다. 즉, 14,400 킬로미터라는 최장 비행거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에어버스는 모든 기종을 통틀어 3천 여대를 전세계 12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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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요람

여행|2018. 7. 1. 19:31

피카소의 요람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앙티브로 향하는 차장 밖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새파란 바다가 청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작달막하고 하얀 예쁜 배들은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 여유로이 떠 있다.
여기에 간간히 들리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까지 듣노라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잡념마저 쉬이 잊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국제 영화제로 익숙한 칸느(Cannes)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시 앙티브, 작은 어촌이라 불리우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정도인 앙티브는 너무나 사랑스런 마을이다.
지금은 부자들의 휴양지로 옛 도시의 정취를 현대식 건물들에 차츰 빼앗겨 가고 있지만 좁다란 골목들과 오래된 집들이 전해주는 소담스런 풍경과 바다를 면한 곳에 위치해 있는 여유로움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의 시골 기차역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역전을 나서면 앙티브 시의 주요 관광명소와 시내까지 연결되는 코끼리 열차가 반갑게 관광객들을 맞는다. 지난여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열차이용을 포기하고 걸어서 시내까지 간 경험이 있지만 성수기가 아닌 시기의 앙티브 시내는 한적하다.
운좋게도 코끼리 열차에서 내린 장소에서는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싱그런 과일들과 향기로운 꽃 내음이 코 끝을 간지럽히고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청 놓아 떠들어대는 상인들의 외침과 이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꼬마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상쾌한 봄기운이 전해진다.
그리고 장터 한 켠에 마련된 골동품 시장에는 옛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품들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내리쬐는 햇살이 나른한 듯 연신 하품을 해 대는 강아지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앙티브의 시작은 1865년, 유명한 식물학자. Thuret 라는 사람이 이곳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의 풍경과 자연을 발견하게 된 것이 시초가 된다.
당시 이곳에는 사람이 산다는 흔적은 등대 하나와 작은 성당 두 개, 그리고 포도주 농장 몇 개에 불과하지 않았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Thuret는 이곳에 땅을 구입하고 빌라 한 채와 우아한 공원을 짓게 한다. 그리고 식물학자이자 꽃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 덕분에 앙티브는 오늘날 세계 제일의 '장미의 도시' 각광 받고 있다.

그 이후, 앙티브는 빠리 오페라와 몬테카를로의 카지노를 설계한 Charles Garnier 가 네덜란드 백만장자의 부탁으로 이곳에 호화 빌라를 설계하게 되는데 이 호화 빌라는 'Eilenroc' 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세워질 빌라의 모형이 되었고 부자들의 휴양지로 각광 받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83개의 호텔이 생겨나고 11개의 캠핑장이 자리잡게 되었다.
특별한 볼거리를 찾기보다는 소도시의 여유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앙티브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한가로이 마을을 둘러보는데 반나절 정도만 투자하면 되기 때문에 관광명소를 보기 위해 정신없이 ?겨 다녀야 하는 대도시의 여행 일정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으로 골목골목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앙티브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시(市)청사와 장터를 돌아보고 코발트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 우아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는 고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투박한 돌로 지어져 왠지 정감이 가는 이 성은 현재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곳의 입구에는 피카소의 흔적을 설명해주는 현판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피카소는 1939년, 이 곳에서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나찌의 빠리 침공이후 빠리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피카소는 다시 남불의 작은 어촌, 앙티브로 돌아왔는데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배경으로는 당시 앙티브 박물관 관장으로 재임하던 도르드 라 수셰르는 Dor de la Souchere 의 제의를 그가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 전시할 데생 한 점을 피카소로부터 기증 받을 의도로 그를 찾아왔던 박물관장은 성채의 맨 윗 부분에 있는 넓고 환한 홀을 내주면서 피카소에게 아뜰리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피카소는 이 작은 마을의 정취가 맘에 들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성에서 그의 작품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흔쾌히 박물관장의 제의를 수락하게 되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이곳을 방문하여, 반바지의 포켓에 아뜰리에 열쇠를 넣고 같은 해 12월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은 그가 미술관의 기증함으로 그대로 이곳의 소장품이 되었다.
피카소는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이곳을 가끔 찾곤 했는데 어느날 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리말디미술관'이라 불리던 이곳을 자신의 이름을 넣어 피카소미술관으로 고칠 것을 제안하면서 이곳은 오늘날까지 피카소미술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피카소 미술관은 매년 1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며 코트 다쥐르 지방의 가장 매혹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작은 항구의 일상을 담은 장면 중 등불 낚시를 소재로 삼은 '앙티브의 밤 낚시' 등이 유명하다.
피카소의 흔적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앙티브는 매년 여름이면 이곳을 찾는 휴양객과 관광객들의 끊이지 않는 발걸음과 남불 최고의 째즈 페스티발의 뜨거운 열기로 도시전체의 음악소리가 메아리 친다.

이미 38년전부터 'Sydney Bechet' 라는 째즈 연주자에 의해 남불 째즈 축제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앙티브 째즈 페스티발 기간중에는 밤 새워 열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몰려든 째즈 애호가들이 어우러져 멋진 한 여름의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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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걸작품

여행|2018. 7. 1. 19:31

17세기 걸작품

17세기의 걸작품, 보 르 비콩트 성과 베르사유 궁전 모두, 르 브랭(Le Brun), 르 보(Le Vau), 르 노트르(Le Ntre)에 의해 건축 설계되고, 실내 장식되었으며 정원이 만들어졌다.
보 르 비콩트 성은 베르사이유 궁전 못지 않은 프랑스 역사의 현장으로, 보 르 비콩트 성만이 지니는 독특한 역사와 에피소드를 통하여, 루이14세가 군림했던 시대의 뒤안길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루이 14세가 질투를 느꼈을 만큼, 재력과 권력을 지녔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guet, 1615-1680)의 흥망성쇠는 보 르 비콩트 성에서 시작, 보 르 비콩트 성에서 끝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살에 파리의회에 입성했던 니콜라 푸케는 당대 최고의 재무가로, 1656년 보(Vaux) 지역에 자신의 명성과 재력을 과시할 만한 성을 짓도록 작정한다.

재력 못지 않게, 예술분야에도 놀라운 감각과 식견을 지니고 있던 니콜라 푸케, 그가 성을 짓기 위해 소집했던 예술가들은 건축가 르 보, 유화그림과 조각으로 실내장식을 도맡았던 르 브랭, 최고의 명성을 지닌 정원사, 르 노트르 이었다.
Vaux 지역에 있던 3개의 부락이 보 르 비콩트 성으로 흡수되며, 1만8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동원된다. 17세기의 걸작품, 보 르 비콩트의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 그리고 루이 14세를 초대하는 일만이 남았는데...

1661년 8월 17일, 푸케는 퐁텐느블르에 머물고 있던 젊은 루이 14세(1638-1715)를 위해 향연을 베푼다. 이 때, 보 르 비콩트 성을 총 관리하던 지배인은 바텔(Vatel), 바텔의 주도하에 루이 14세를 위한 식탁이 차려진다.
젊은 왕의 자존심을 자극할 정도로 금으로 된 찬란한 식기와 잔들, 그리고 음식은 왕의 기대치를 능가했었을 만큼 훌륭하고 완벽했다.
보 르 비콩트 정원에서는 여흥과 오락이 펼쳐지는데, 음악에 맞추어 1200여 개의 분수대 물이 품어 오르고, 정원을 흐르는 운하에서 뱃놀이도 벌어진다.
배 위에서 장대를 가지고 상대를 물 속에 빠트리게 하는 놀이, 뽑은 번호 모두가 당첨되는 복권놀이 등의 오락을 비롯, 화려한 무도회도 펼쳐진다.
유흥의 절정은 몰리에르와 그의 극단이 공연한 야회 극장. 이날 저녁, 몰리에르(Moli re, 1622-1673)는 프랑스 문학사에도 기록이 남을 "Les Fcheux" 라는 코미디물을 처음으로 푸케의 성에서 선보인다.

푸케가 루이 14세를 위해 마련한 "세기"의 향연, 그러나 만찬의 주인공이었던 루이 14세의 노여움을 사고 만다. 푸케의 성은 루이 14세가 보지 못했던 가장 아름다운 성이었으며, 게다가 자신의 궁전에서 벌이는 향연들 보다 더 화려하고 훌륭한 축제를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자존심이 상한 루이 14세는 결국, 현장에서 푸케를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리며, 이 때 왕의 생모인 안느 도트리쉬 왕비가 이를 만류하는데...
그로부터 19일 후, 푸케는 루이 14세의 근위기병(Mousquetaire)달타냥 (d'Artagnan)에 의해 결국 체포되고 만다.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푸케는 추방령이 선고되며, 루이 14세는 마음을 바꾸어 그를 감옥에 투옥케 한다. 푸케는 체포와 더불어 전 재산이 몰수된다.
동시에, 루이 14세는 보 르 비콩트 성을 탄생시킨 주역들, 르 브랭, 르 보, 르 노트르를 소환, 푸케의 성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궁전을 짓도록 명령을 내린다.

루이 14세의 권력을 상징하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이렇게 해서 탄생이 된다.
1661년은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정립이 시작된 해로 역사가들 역시 의견을 모으고 있다.
1661년, 보 르 비콩트에서 펼쳐진 향연을 통하여, 젊은 루이14세는 연극, 무도회, 음악을 동반한 분수대 놀이 등이 지니는 화려함과 재미에 눈뜨게 된다.
이들 유희들은 루이 14세와 베르사이유 궁의 생활에서 분리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한편, 니콜라 푸케는 17세기의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작가, 콜베르, 몰리에르, 라 퐁텐느, 볼테르 등을 비롯하여 조각가, 화가, 음악가 등, 당대를 풍미하던 예술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 이들 예술가들이 보 르 비콩트에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하도록 배려했다.
1661년, 푸케의 몰락과 더불어, 라 퐁테느는 왕권에 대한 조소를 담은 'El gie aux Nymphes de Vaux'를 창작하기도 했다.

보 르 비콩트 성은 루이 14세 시대를 특징 짖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인다. Grand Salon의 장식은 푸케의 체포로 인하여 미완성된 작품. 살롱에 배치된 가구들 중, 대리석으로 된 두 개의 테이블만이 푸케의 소유로 추정된다.
르 브랭이 천장에 그린 "Les Neuf Muses" 등의 그림은 예술의 극치를 보이며, 베르사이유 궁전과는 달리, 지하에 마련된, 푸케 시대에 이용되던 거대한 부엌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부엌은 1956년 때까지 실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보 르 비콩트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하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절대왕권과 더불어 꽃피우게 된 17세기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베르사이유 궁전 못지 않게, 교육의 산실이 되고 있다.

단아한 성, 보 르 비콩트 성만이 지니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이전, 성 주변을 가득 메우는 방문객들을 보며 먼저 놀라게 될 것이다.

촛불이 켜진 보 르 비콩트의 야경 방문(Visites au Chandelle)
파리로부터 남동쪽으로 50Km 떨어진 보 르 비콩트 성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성을 방문하기 위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자동차로 방문하는 방법이 유일, 고속도로 A5를 타고 Troyes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보 르 비콩트 안내 표지판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은 A5 고속도로로부터 역 4, 5Km 지점에 떨어져있다.
10시부터 18시까지 현지 가이드 동반으로 성을 방문할 수 있다.
5월 12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 토요일마다, 20시부터 24시까지, 보 르 비콩트의 야경방문이 가능하다.

단 7월 14일의 토요일은 제외. 5월24일과 6월3일 역시 2천여 개의 촛불이 켜진 보 르 비콩트 성과 정원, 음악이 동반된 분수대 쇼를 감상할 수 있다
16661년 한 여름날 밤, 아름다운 성에서 푸케가 루이 14세를 위해 베풀었던 "역사적"인 향연, 푸케로서는 "치명적"이었던 그 향연을 재연하는 방법 중에 일환으로 야경의 촛불 방문이 마련된다.
"le Roi-Soleil", 루이 14세가 지니는 절대 권력의 뒤안길, 보 르 비콩트 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루이 14세의 오만함과 질투 역시 동시에 이해 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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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

여행|2018. 7. 1. 19:30

마리안느

마리안느 (MARIANNE)
과거 앙샹레짐 하에서 군주는 자연스럽게 국가와 동일시되어왔고 전국 곳곳에서 국왕의 동상 및 흉상을 세워 이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1792년 제1공화국이 설립되었을때, 이 새로운 제도를 상징하는 여성 흉상이 만들어졌다.
이 이름이 왜 만들어졌는 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 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것을 대표하여왔다.

1849년 마리안느가 최초로 우표에 등장 하였는데, 이때는 월계관을 쓴 여성의 모습이었다.
제3공화국 하에서 그녀는 프레지아 모자를 쓰 고 등장한다.
오늘날 프랑스의 모든 시청에서 공화국을 상징하고 있는 그녀의 흉상 혹은 프로필 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삼색기

삼색기 (LE DRAPEAU BLEU-BLANC-ROUGE) 우선 삼색기에 쓰인 색깔들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를 지배했던 과거의 왕조들은 각기 서로 다른 색깔의 깃발을 사용하였습니다.
첫째로 파란색은 샤르마뉴 (CHARLEMAGNE) 대제의 대관식때 나부끼던 깃발의 색깔이었는데, 샤르마뉴가 한 가난한 사람 에게 주었던 망토의 색깔과 같은 것으로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클로비스 (CLOVIS)에서부터 샤를르10세에 이르기까지 왕권과 충성의 상징으로 파란색 망토를 걸쳤습니다.
위그카페 왕조에 이르러서는 빨간색이 왕실깃발로 사용되었고 한얀색은 1638년부터 1790년까지 그리고 1814년부터 1830냔까지 국왕의 깃발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가지 색을 섞어놓은 삼색기 는 모든이들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프랑스혁명때부터 사용되었습니다.

1815년 왕정이 복고되 면서 다시금 흰색을 공식적인 왕실기로 사용하였고 1848년 2월혁명때에는 공화국을 상징하는 깃 발로 빨간색을 사용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그후 더 이상 국기를 어떤 색으로 하는가에에 대한 시도는 더 이상 없었고 오늘날 프랑스를 상징하는 공식국기로 삼색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삼색기의 역사에 대해서만 놓고보자면 이는 1789년 7월 17일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스티유 함락 3일 후에 국왕 루이16세(LOUIS XVI)가 파리에 도착 했을때, 당시 파리 시장 인 Bailly가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군대의 지휘를 상징하는 백색 휘장 옆에 그의 모자를 걸어놓 았고, 그 옆에는 파리시의 상징인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깃발이 있었다.
이렇게하야 혁명 과 제국의 승리에 바쳐진 애국적인 상징으로 프랑스 국기가 탄생하였습니다.
오늘날 헌법 제2조 에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프랑스 공화국의 공식적인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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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년경에 쎈느강의 섬에 정착했다고 한다

여행|2018. 7. 1. 19:30

기원전 300년경에 쎈느강의 섬에 정착했다고 한다

① 기록에 의하면 켈트족의 빠리지(Parisii)라는 부족이 기원전 300년 경에 쌘느강의 섬들에
    정착했다고 한다.

② 기원 후 52년 시저에 의해 갈리아 지방이 정복되면서 빠리는 로마의 속주가 된다.
    당시 빠리는 루테시아(Lutecia, 불어로는 Lutece)로 불리웠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빠리는 상당히 팽창을 했다.
    정복자들은 로마식으로 도시를 세웠다. 광장과 사원, 그리고 재판장을 포함하는 포럼이
    높은 곳에 위치했고, 지금도 남아 있는 목욕장이(그 건립연대는 2세기말에서 3세기 초로
    추정됨) 포럼 주위에 세워졌다.

③ 3세기 중엽부터 골 지방의 북쪽의 반은 게르만족의 이동에 의해 황폐화되었다.
    빠리인들은 야만인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씨떼 섬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람들은 섬에서 나와 강의 좌안과 우안에 도시를 건설했다.

④ 4세기부터 야만족의 위협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에 빠리는 로마의 방어요새였고, 이곳을
    통해 주요 관통로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물었던 쥘리앵(357-358, 359-360년 사이)은 355년 뤼때드라는 이름을 빠리로
    바꾸었다.

⑤ 로마가 멸망한 후 빠리의 도시규모는 다시 축소되어, 씨떼 섬 내로 한정되었다.
    450년 쥬느비애브는 빠리시민들을 규합하여 훈족의 침입에 대항하였다.

⑥ 로마시대보다 작은 규모로 유지되던 빠리는 메로빙 왕조와 카롤링 왕조를 거치면서 다시
    주요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클로비스는 508년 빠리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⑦ 10세기말 까뻬왕조가 등장하면서 씨떼 섬에 왕이 머물 궁전이 세워졌다.
    당시 프랑스는 쌘느 강을 중심으로 방위노력을 하였고, 이에 따라 빠리는 수도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루브르 궁이 도시의 서단(西端)에 세워졌다.

⑧ 필립쁘 오귀스뜨의 치하에서 빠리의 영토는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씨떼 섬을 중심으로 우안(右岸)에 상업 및 주거지가 들어섰고, 좌안(左岸)에
    대학지구(Quartier latin)가 형성되었다.
    13세기부터는 모든 왕국의 공공기관들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⑨ 1370년 경에 지어진 성벽은 쌘느강의 북쪽부분이 새롭게 빠리에 포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빠리의 경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오늘날과 같은 빠리의 경계는 1841년 성벽(이 성벅은 오늘날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도시
    순환도로가 들어서 있다)을 지으면서 확정되었다.

⑩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오스만의 빠리개조계획은 중세적인 빠리의 도시구조를 근대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농촌지역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가속화되었고, 산업혁명기 서구 공업도시는 환경을 파괴하였으므로 인구가 과밀한 지역의 위생상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오스만은 이런 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첫번째로 교통망을 조직하고, 둘째로 도로망 이외에도, 물을 계속 흐르게 하고, 하수구를 설치하며, 가로수를 심어 청결한 도시를 만들고, 셋째로 여러 시설을 지었다. 시청과 구청들, 도서관, 교회, 극장, 공공 시장 등을 전 도시에 고르게 분포시켰으며, 빠리의 구(arrondissement)를 20개로 정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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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엘

여행|2018. 7. 1. 19:29

프랑스 노엘

프랑스 거리는 12월이 되면 온통 화려한 불빛들로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다.
이때부터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탁하기 위한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즐거운(?) 실랑이를 벌인다.

NOEL이 들어있는 12월은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에도 설레임과 풍요로움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각 대형 상점(봉 막쉐, 생 마르뗑, 쁘렝땅, 갤러리 라파이예트 등)들이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 어린이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쇼윈도우에는 어린이들의 상상을 담은 아름다운 동화나라를 창조해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먼저 갤러리 라파이예트의 경우 3월을 기점으로 그 해 12월을 장식 할 주제를 선정해 최소한 6개월간에 거쳐 그것을 만든다고 한다. 6,7월에 각 지역으로 배달이 되고 10월부터 하나씩 준비된 장식을 설치하며 11월말이면 모든 장식이 완성되어 상점을 찾는 고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프랑스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G.lafayette백화점에 장식을 담당하고 있는 Mr.RENARD thierry는 올해의 주제를 1970년대 러시아풍의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복고적이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붉은색과 오렌지 계열의 색상이 선택되었으며 보석과 고급스러운 원단의 느낌을 살린 특수한 장식을 이용해 그 특징을 살렸다고 한다.
또한 12월1일부터 월,토요일을 제외한 오전 11시부터 30분 간격으로 8분에서 10분정도의 8개의 스펙타클을 제공하고 있다.

Bon marcher의 경우 장난감들이 선물 상자 안에서 춤추고 움직이는 앙증맞은 장식으로 어린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또한 12월이면 각 지방 마다 특색있고 운치 있는 장식과 아기자기한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훈훈한 향수를 자아낸다.

'Rouge et Or, 적과 금'의 알자스로 불리는 스트라스부르그의 Noel풍경은 그중에서도 돋보인다.
매년 연말축제를 위해 스트라스부르그는 수천개의 전구로 시가지 전체가 장식된다. 4세기동안, 스트라스부르그는 'Noel시장'을 개설해왔는데, 꼴마르와 뮐루즈 또한 브로글리 광장처럼 작은 방갈로형 나무 집들을 설치한다.

수세기를 거쳐 온 스트라스부르그의 전통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알자스로 확대되었다. 스트라스부르그는 12월 한달 동안은 거대한 노엘시장으로 변모한다.
보쥬산맥과 라인강 사이, 그리고 Saint-Etienne까지 삼일동안 축제가 펼쳐진다. 알자스인들은 '노엘의 수도' 스트라스부르그라는 슬로간에 밀려 이 축제의 의미를 잃어버릴 뻔했다.

그래서 올해는 노엘의 근본적인 취지인 `나눔`을 강조한다. 스트라스부르의 경우, Christkindelmarik(어린 예수의 시장)이라는 전통을 1570년부터 지켜왔다.
이 전통은 이 도시의 신교도들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처음 취지에 비해 이상하게 변해버린 St. Nicolas시장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장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오래된 브로글리 광장의 시장을 방문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 매주 일요일에 하나씩 켜는 4개의 초로 장식된 Avent의 왕관, 호랑가시나무, 겨우사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매년 크리스마스트리장식과 요람을 파는 행상도 눈에 뜨인다. 곳곳에서 계피향과 뜨거운 포도주와 고프르 냄새를 맡으며, 약간의 향이 섞인 노엘맥주도 맛볼 수 있다.
브로글리광장에서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길이 연결된다. 몇 년 전부터 성당 앞에서는 전통공예품과 사탕을 파는 목재가판대가 설치되었다.

쁘띠뜨프랑스구역에 위치한 알자스향료시장, 역 앞에 설치된 대형바퀴와 노엘에 봉헌하기 위해 12월에 만들어진 열 가지가 넘는 작은 향 과자를 파는 Bredle신시장 또한 잊지 않고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스트라스부르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꼴마르의 '노엘의 마술'과 시 전체를 꾸미는 전구장식과 Petite Venise에 개설된 4개의 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 중의 한 시장은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해서 자동인형으로 작동되는 요람으로 꾸며진다.

지방의 각 도시들은 고유의 건축물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아름다운 전구로 장식한다.
작은 마을들까지도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최대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준비한다.

매 저녁마다 '노엘동화와 전설'이라는 주제의 관광안내가 제공된다.
뮐루즈는 Reunion광장에만 시장이 개설되지만, 70여개의 판매대에서 크리스마스트리장식인 꽃 장식, 작은 공, 적색과 금색 천으로 만들어진 별장식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섬유공업지인 알자스남부도시들은 매년 노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만평방미터의 천을 제공하는데 이 천은 상점의 쇼윈도우를 장식하는데 사용된다.

알자스의 각지방에서는 노엘기간동안 수많은 문화행사, 축제가 개최된다. 또한 북부의 '별의 지역'은 꼴마르를 중심으로 포도주를 생산하는 가장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이 매 저녁마다 행사를 제공하는데, Turckheim은 Avent기간동안 매일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가로등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Ribeauville이나 Riquewihr방문은 알자스포도주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Selestat지역과 Obernai까지의 Vosges산록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지역'으로 Selestat에서 태어난 빨간 사과와 봉헌물로 장식된 '천국의 나무'라는 전통을 상기시키는데, 16세기부터 전 알자스교회에 보급되었다. Strasbourg 북서쪽에는 '노엘 빛의 지역' 그리고 북쪽에는 Wissembourg부근에 살았던 알자스의 매질하는 할아버지인 Hans Trapp의 '신비의 지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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