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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뉴스상식

블록체인이 도입될 수 있는 업무는....

정말 기계가 펀드매니저를 대체하는가?

펀드매니저를 하고 있는 절친이 진지한 상담을 원한다면서 늦은 밤에 사무실로 찾아왔다. 요즘 4차산업 어쩌고 저쩌고에 블록체인이라고 말들이 많고, 머신러닝이 펀드매니저 업무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코인이라는게 완전히 우리가 아는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을 것처럼 말들하는데, 진짜 그렇게 되냐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의도에서 소문만 듣고 주식사고 있는 애들은 좀 걱정하고 정신차려야 한다고 놀리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그래도 가까운 친구가 근거없는 낭설에 휘말려서 엉뚱한 회사들에 투자하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몇 마디 정리해줬다.


우선 머신러닝이 펀드매니저 업무 어쩌고 부분은 투자 전략이 데이터 속의 패턴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머신러닝으로 대체되는 부분이고, 데이터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니네가 당장 짤릴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고 위안(?)을 해줬다ㅋㅋ (물론 니네 보스가 초보적인 지식 수준으로 무조건 로봇으로 바꾼다고 우격다짐으로 나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결국엔 조건 A, B, C,….. 가 결합될 때 자산 가격 움직임이 random이 아니라 매우 높은 확률로 예측 가능한 경우의 수를 찾는 작업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무슨 종류의 uncertainty가 나타날지 모르는 시장에서는 쉽지 않은 게임이라고, 그리고 그런 성공하는 rule이 나오면 순식간에 Copy해서 Arbitrage할 기회가 빠르게 사라지는게 금융 시장의 특성이다보니, 기업의 잠재가치를 깊이 있는 지식으로 평가해서 투자전략을 짜는 팀은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말해줬다.


친구가 가져온 내용 중에 기초 지식 없이 화려한 미사어구만 잔뜩 늘어놓은 글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된 거래 구조가 금융 시장의 모든 시스템을 다 바꿀 것이라는 “뇌피셜”이 가득 담긴 보고서였다.


탈중앙화 시스템, 정말로 꿈처럼 될까? – 증권선물거래소

가장 눈에 띄인 타이틀이 증권 거래소, 선물 거래소의 기능이 블록체인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망상”이었다


왜 한국에는 증권/선물 거래소가 하나 밖에 없을까? 왜 그 기관을 정부가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거래 규모가 작고, 항상 정부가 모든 걸 개입하는 후진 국가니까? 그럼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 다우존스지수, 나스닥, 시카고 선물 시장 같은 대형 거래소들이 왜 SEC같은 정부기관의 규제를 받고 있을까?

첫번째는 사기(Fraud)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팔았다고 해 놓고 돈을 넘겨받으면 그 자산을 이전해야하는데, 정작 자신이 갖고 있지도 않은 자산을 팔 수도 있고, 제한적으로 그런 공매도를 허용해줬다고 하면 더더욱 돈을 지불한 사람이 자산 인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이 부분까지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시스템으로 제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굳이 거래소가 없어도 개인간의 거래를 기록해 놓은 다른 블록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실거래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다만 손해가 났을 경우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효율성에 대해서는 잠재적인 의구심이 있다.


두번째는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서다.

모든 네트워크는 중앙집권화되어 있는 구조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효율적이다. 이걸 Star Network라고 한다. Star Net이 효율성 최적화를 달성하지 못하는 유일한 경우는 중앙의 제어 기관이 제대로 다른 Entity간의 정보 공유를 못 하는 경우 밖에 없다. 서버라고 치면, 중앙서버가 트래픽 폭주를 못 이기고 터진 상태, 중앙집권적인 국가라고 치면 중앙정부가 지방 정부들보다 더 작아져서 컨트롤을 못하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컨대, 중앙에 있는 Star만 멀쩡하면 그 시스템은 항상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식 탈중앙화된 시스템으로 거래소 기능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당장 미국의 지역 거래소들이 매수/매도 주문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한계를 악용해서 대차거래 (Arbitrage)를 하는 High Frequency Trading이 2000년대 초반까지도 대유행이었다. 속도가 빨라지면 해결된다고? 네트워크 서버 용량을 무한대로 키운다고 해도, 매수 주문량과 각 네트워크 노드별 매도량의 차이를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Mesh Net에서는 정보가 네트워크의 Node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구간에서는 병목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더 빨라지면 차라리 한국처럼 하나의 Center를 갖는 Star net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더 크다. Star의 서버 용량만 무한대로 업그레이드 해 놓으면 지방 네트워크가 필요없어지니까.


세번째는 금융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2008년 Global Financial Crisis를 겪고 난 다음에 시장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위험 (Herding behavior risk)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선물(Futures, 생일 선물 아님-_-) 시장의 경우, 매일의 종가에 따라서 이익/손해가 결정되고, 손해 본 만큼 증거금을 채워넣어야한다. 그래서 이익 본 계정에 그 만큼의 이익을 채워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Marking-to-market이라고 하는데, 대폭락이 있을 때마다 모두가 손해를 보고, 그래서 증거금이 부족하니 모두가 자산을 더 매각하려고 하고, 살려는 사람은 없고 팔 사람만 있으니 가격이 더 떨어지고, 증거금이 더 필요해지고, 다시 더 팔려고 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른바 시스템의 구조적인 형태 때문에 모두가 한 가지 선택만 하려는 상황에서 나오는 위험 (Systemic risk)를 줄일 방법, 최소한 그 위험을 계산해서 수량화하려는 시도들이 줄을 이었다. (필자의 박사시절 연구 주제였다 ;;;)


현재의 거래소 운영 방식을 네트워크로 표현하면 Star net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매도-매수자 사이에 파생상품 청산소 (Clearing house)가 Center에 있어서, 둘 중 한 쪽이 파산하더라도 중간에서 정산을 해 준다. 그런데,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대방이 파산했을 때, 내 이익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낮을 수 밖에 없고, 감독하는 기관이 없으니 블록들끼리 다수결로 담합을 해버리면 Fraud가 정상 내역보다 더 많아져서 정확성을 담보하기도 힘들어진다. Mesh net이 블록 하나하나에 대한 공격에는 매우 강력하게 방어할 수 있는 체계이지만, 블록 그룹의 절반 이상이 오염되어 버리면 모든 블록들을 일일히 조사해야하는 꼴이 된다. 중앙 시스템 하나만 감시하면 되었던 Star net보다 오히려 관리 비용이 더 커진다.


본 글은 Pabii 이경환 대표님의 블로그 글이 너무나도 유익해 공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