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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단오,의미,유례 알아두자


만든 이유

농경사회에서 파종을 하고 모를 낸 후 약간의 여유가 있는 기간에 재액을 예방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생겨났다. 수릿떡을 만들어 먹고,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단오제를 지내기도 한다.

배경과 역사

예로부터 3월 3일, 5월 5일, 6월 6일, 7월 7일, 9월 9일 등 월과 일이 겹치는 날은 양기가 가득 찬 길일로 쳐왔는데, 그 가운데 5월 5일을 가장 양기가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 명절로 지내왔다. 단오의 다른 이름인 수릿날의 수리란 말은 고(高)·상·신(神)을 의미하는 옛말인데 이날은 1년 중 최고의 날이란 뜻도 된다.

추위가 늦게까지 계속되는 북쪽지방은 이때 비로소 날이 완전히 풀리기 때문에 경사스러운 날로 기념했는데, 그런 까닭에 남쪽이 추석을 중요하게 여길 때 북쪽에서는 단오를 더 중시했다. 오늘날도 단오를 쇠는 곳이 더러 있어 해서지방에서는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등 탈놀이를 하기도 하며, 지금도 강릉지방에서는 남대천의 넓은 공터에서 단오굿판이 전승되고 있으나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다.

옛 문헌에 나타난 단오풍습

① 쑥호랑이 : 단옷날 임금은 신하들에게 쑥호랑이를 하사한다. 쑥호랑이는 잔 짚을 사용해 호랑이 모양을 만들고 비단조각으로 꽃을 묶어 쑥잎을 붙여서 머리에 꽂도록 한 것이다. 세시잡기에 ‘단옷날 쑥을 가지고 호랑이 형상을 만들고, 또는 비단을 잘라서 작은 호랑이를 만들며,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는다’고 했는데 한국 제도도 이것을 본뜬 것이다.

② 단오부채 : 공조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각궁의 신하들과 시종들에게 나눠준다. 부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살이 흰 대나무 화살 같은 것이 40~50개나 된다. 이것을 백첩이라 하며, 칠을 한 것을 칠첩이라 한다. 이것을 받은 사람은 대개가 여기에 금강산 1만 2,000봉을 그린다. 또는 근대의 풍속으로 기생이나 무당 등이 가진 것에는 버들개지·복사꽃·연꽃·나비·흰붕어·해오라기 등의 그림이 있다.

③ 천중부적 : 관상감에서는 천중절에 붉은 부적을 박아 대궐 안으로 올린다.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여 상서롭지 못한 것을 막는다. 경사대부의 집에서도 부적을 붙인다.

④ 제호탕:내의원에서는 제호탕과 금박을 입힌 옥추단을 만들어 바친다. 옥추단은 오색실에다 꿰어서 차고 재액을 제거하는 데 쓰며, 임금이 가까운 신하들에게 나누어준다.

창포:남녀 어린이들이 창포탕을 만들어 세수를 하고 홍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는다. 창포의 뿌리로 만든 비녀에 수·복의 글자를 새기고, 끝에 붉은 연지를 발라 머리에 꽂아 재액을 물리치는데 이것을 단오장이라 한다(→ 명절).

관련 행사

옛날에는 이날 하루 마음껏 놀이를 즐기며 휴식을 만끽했다. 또 약초를 캐고 창포를 문에 꽂아두기도 하며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창포주나 약주를 마셔 재액을 예방했다. 쑥으로 인형이나 호랑이를 만들어 문에 거는 풍습도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로 보아 약초·창포·쑥 등의 강한 향기와 약성으로 재액을 쫓았던 것 같다. 이날은 차륜병이라 해 수리취를 넣어 둥근 절편도 만들어 먹었으며, 그네뛰기·씨름·탈춤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오늘날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단오를 쇠지 않으며, 단오를 쇠는 강릉, 전주 등의 지역에서 단오제를 개최해 옛 단오 풍습에 관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명절의 뿌리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중 강릉 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제 13호로 등록된 데 이어 200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중국의 단오

단양절이라고도 하는 중국의 단오절은 양쯔 강[揚子江]과 한수이 강[漢水] 유역으로부터 서남과 화남 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명절로 지켜지고 있다. 주요행사는 용선 경주인데 사람들이 징과 북을 요란스레 두드려대는 가운데 용의 모양으로 장식한 길다란 배를 저어 경주를 한다.

전해지는 바로는 전국시대의 위대한 애국시인 굴원을 기념하던 것이 이 명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굴원이 자살을 결심하고 미뤄 강[汨羅水:지금의 미수이 강]에 몸을 던진 후, 사람들이 작은 배를 저어 강을 따라가며 그를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후 굴원의 기일이 되면 사람들은 그때와 비슷한 행동을 하여 그의 혼을 달랬고, 대나무통 속에 쌀떡을 담아 강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훗날 이러한 의식은 점차 변하여 오늘날과 같은 즐거운 명절이 되었다. 이날 행해지는 용선 경주는 힘과 자신감, 그리고 중국 민족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준다.